소실vanish
<장편소설>
(2000년대 초 작품)
“소실” vanish

<K에 관한 보고>
왜 인도였을까?
검은 피부에 곱슬머리를 한 팔억의 인구가 사는 나라. 한 번쯤 시원(始原)에 대해 생각하게 되면 떠올려지는 나라. 그곳으로 그가 간 이유는 아무도 몰랐다. 흔한 여행객들처럼, 그저 마땅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이 어떻고 어떻다니 한번 가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짐을 쌌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왜 그가 하필이면 인도로 가야 했는지 묻지 않으면 안될 그런 상황에 있었다.
왜 인도였을까. 하지만 그가 왜 인도로 가야했을까에 대한 해답은 아무도 갖고 있지 않았다.
다만 사람들은, 그의 부모나 나 정도가 그렇게 추측하고 있을뿐이지만, 그에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이 그를 인도라는 낯선 곳으로 몰아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다시 말하지만 추측일 뿐이다.
그에게 있었던 일련의 사건들. 사건이라고 해도 사실 명확한 이유는 되지 못했다. 그 일련의 사건이란 것이 실직과 연이은 여자친구와의 결별, 그리고 아무 하는 일 없이 집에서 그렇게 일 년을 보내는 동안 심적으로 적지 않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란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그것은 우리네 이즈음의 풍경으로는 흔하고도 흔한 일이 아닌가, 게다가 그의 부모가 아직 일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경제적으로도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하긴 경제적인 곤란을 겪었다면 인도 여행은 생각도 할 수 없는 호사일테니 이유랄 것도 없었다.
아무튼 그는 인도로의 여행이 얼마나 걸릴 것이고, 어디를 경유할 것인지에 대한 아무런 이야기도 남기지 않은 채, 커다란 배낭을 매고 비행기 티켓을 들고 인도행 비행기를 탔던 것이다.
그의 부모는 또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그가 인도로 간다고 했을 때, 여행의 목적이나, 이유, 하다못해 왜 인도냐는 따위의 물음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했다. 차라리 혼자 여행이나 다녀오는 편이 아들을 위해 좋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수염이 덥수룩해지고 햇빛에 그을린 피부가 그럴듯하게 빛을 내며 당당하게 서울로 돌아 오거나 하지 못했다. 그는 그곳에서 시체로 발견되었고 그의 부모가 살고 있는 도시 서울로 조금씩 썩어가는 육체로 돌아왔다.
그가 발견된 곳은 인도 남부 케렐라의 어느 지역이었다고 한다. 그가 비행기 편으로 인도에 도착한 곳이 뭄바이, 그러니까 그가 그곳을 비행기로 가지 않았다면 기차 편으로 이틀은 꼬박 가야만 했을 것이다. 인도의 기차는 10여 시간 혹은 만 하루를 연착 할 만큼 악명이 높았다. 게다가 냄새 나고, 복잡하며 지독하게 시끄러운 것은 덤이었다. 만일 그가 기차를 이용했다면 그는 자신의 마지막 여행을 아주 소란스럽게 끝마친 셈이 된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가 죽고 그의 시신이 부모에게 오기까지 한 달 보름이 걸렸다고 한다. 이유는 그를 확인할만한 아무런 단서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가 입고 있던 옷, 사용하던 소지품을 가지고는 그가 일본인인지, 대만이나 혹은 홍콩인인지, 그도 아니면 아시아 아메리칸인지 알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건 우리들 중 어느 누구라도 신분증도 없는 상태로 어떤 낯선 땅에 버려져 있다면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게다가 얼굴이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심하게 짓이겨져 있었다면 더욱…
그렇다 정말 참혹한 일이었다. 그가 발견되었을 때 그는 신원을 확인할 수 없는 남자가 되어 있었다. 피부 색깔만 가지고 그저 동양인이라는 정도를 알았을 뿐.. 곧 당국은 인도로 들어온 동양계 외국인에 대한 검색을 했고, 각국의 대사관들은 사망자의 얼굴이 알아 볼 수 없을 만큼 심한 린치를 당한 사실에 경악하고 서둘러 신원을 밝히는 조사에 들어갔다. 어떤 정치적인 테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고 한다.
그가 돌아온 한 달 보름의 기간은 그나마 각국 대사관들의 발 빠른 대응으로 무척 빨리 돌아온 편이었다. 인도인들은 대게 일 처리가 느긋해도 너무 느긋했기 때문이다.
신분증이 없었으므로 그의 지문을 일일이 검색하는 과정에서 그가 한국의 관광객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그는 그저 관광객이고, 소매치기를 당한 후, 저항하다가 죽음을 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한국으로 그의 시신이 보내졌다.
그의 유해상환에는 소포를 주고 받는 것과 같은 간단한 인수증 싸인이 있었을 뿐이었다. 국기를 관에 씌운다던가, 절도있고 품위있는 의장대의 사열을 받지도 않았다. 결국 그는 노바디nobody 였기 때문이다.
nobody….
<나에 관한 보고>
여지껏 4년제 대학엔 출강도 못 해 봤다. 벌써 보따리 장사를 시작한 지가 1년이 넘었지만, 지방 두 곳과 서울 두 곳 전문대에 강사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것도 교양만. 열패감을 느낄 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생각해 보면 너무 사람들이 많았다. 비슷비슷하게 대학원을 다니고 논문을 써서 학위를 따고, 너도 나도 보따리를 싸고 출강을 다녔다.
그나마도 줄을 댈만한 인맥이 없으면 낭패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지도교수님과 여차여차 선이 닿아 있는 학교에 강사자리가 만들어지면 난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 다니는 거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컴퓨터로 리포트를 쓰는 건 고사하고 문장도 제대로 만들줄 모르는 그런 대학생들이 우굴우굴한 곳으로 가서 좀 조용히 해! 소리를 지르며 이상이나 김동리에 대해 말하는 것이?
평론을 쓰거나, 창작을 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고만고만한 학위의 석박사들을 따돌리고 좋은 자리를 딸 수가 없다. 임용에 있어서 그것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고 할순 없지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내겐 꼭 필요했다. 아니 그렇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건 이상하게도 내겐 절대적인 것이 되어갔다.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닌 줄 알면서도 반드시 ‘나’에겐 필요하다는 생각이 날 온통 지배하고 있었다. 글을 써야 한다. 생각은 거기까지 미치고 있지만 난 별로 움직이질 못 했다. 내 욕망을 소화 할만한 능력이 내겐 없는 것 같았다.
이대로 나는 천천히 동면을 하게 될지도 몰랐다. 무능력했던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전쟁 전후만 해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다고 했다. 존경과 선망도 받았다고 한다. 당시만 해도 선생님이란 그런 직업이었다고 어머니는 말했다. 그렇게 그는 어머니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그는 게을렀다. 그는 그 게으름 때문에, 어머니는 그 사건을 두고 게을렀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전쟁이 끝나고 교육체제를 재 정비할 때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얼마후 가르치는 일을 그만 두어야 했다.
그리고 막내인 내가 보따리 장사를 하는 지금까지 아버지는 어머니의 벌이에 의존하며 살아 오셨다. 그는 있으되 있지 않은 사람이었다. 집안에서는 아무도 그의 말에 귀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늘 아침 일찍 일어났지만, 또 늘 동면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희미한 표정을 짓고 있어다.
K의 어머니에게서 전화가 온 것은 뭐든 써야 한다는 강제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게으름 사이에서 절망하고 있던 그런 즈음이었다. 강의는 기말고사와 함께 하나씩 끝나고 있었다. 계약이 끝나는 다음 해의 강사자리가 또 걱정 되기 시작 했고 지난 한학기 동안 변변한 평론이나 글을 못썼던 것을 후회하고 있었다. 그래봐야 변변히 쓰지도 못 하면서…
그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받았을 때 나는 당사자도 아닌, 더군다나 그의 어머니의 낯선 목소리 때문에 미안하게도 K의 이름과 얼굴을 떠 올리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K는 신기하게도 내 기억속에 거의 남아있지 않았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나마 얼굴과 이름을 겨우 떠 올렸을 뿐 그와 관련된 거의 아무런 기억도 나지 않았다. 게다가 그는 이젠 이승의 사람도 아니었다.
“K가 죽었는데… 그 아이 친구 누구에게 연락을 해야 할 지 몰라서, 그냥 그 애 수첩에 있던 전화로 그냥 전활 하고 있어요… 엉뚱한 전화를 할지도 모르고 해서… K하고는 어떤 관계였나요.”
“대학 동깁니다”
“그래요. 그럼 수고가 되더라도 친구들에게 연락 좀 맡아서 해 주지 않겠어요? 내일 바로 화장을 할 건데…손도 필요할 듯하네요…”
“네. 제가 친구들에게 연락을 하겠습니다. 뭐라 위로의 말씀을 드려야 할지…”
“그럼 그렇게 좀 해 주세요. 위치는…”
<나와 K의 마지막 술자리>
나는 주소록을 꺼내 그를 알고 지냈던 사람들을 하나하나 호출하기 시작했다. 졸업하고 5년, 빠른 사람에겐 8년의 세월이 지나 있었다. 그리고 하나 둘 더 이상 그들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50명의 국문과 동기들은 그렇게 기억에서 사라져갔다. 더러 그 중에서 죽은 사람도 있을까? K처럼…
그러다 불현 듯 그들이 나타난다. 죽은 채로. 지독한 농담 같다.
대충 사람들에게 알리고 나자 벌써 피곤해 졌다. 되도록 별 감정을 띠지 않으려 애를 썼지만, 혼란스러웠다. 분명 죽음을 알리는 것인데, 밥 먹었어? 하듯 이야기 한다는 것도 이상하지만, 그렇다고 감정을 싣는 다는 것도 이상했다. 되도록 덤덤하게 사실을 말하려 노력했지만, 상대방의 반응에 따라 조금씩 다르게 이야기 하는 것을 알았다.
날 반가워 하는 사람은, 근데, 동기중에 K있잖아? 걔가 죽었데. 너 기억나지? 라고 이야기 했다. 그건 좀 자연스러웠다. 일단 그나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 받은 다음이기 때문에 K의 이야기를 꺼내기가 자연스러웠다는 말이다.
하지만 날 반가워 하지 않는 사람들, 니가 웬일이냐?는 투로 묻는 사람들에게는 그렇지 못했다. 응, 다른 게 아니고. K 알지? 걔가 죽었다고 해서. 라고 이야기 했다.
사람들에게 죽음을 알리는 일도 여간 피곤한게 아니었다. 나는 동기들과 통화를 하는 동안에, 여러번 질문을 받았기 때문에 내가 어떻게 할 것인지를 자연스럽게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다음날 갔다가 그냥 올까 했지만, 화장을 하고, 여러 의식을 거치는 게 부담스러워 졌다. 때문에 나는 오늘 잠시 들러 조문을 하고 핑계를 대고 돌아올 생각을 했다.
나는 은아에게 메시지를 남겼다. 그녀와 나는 지금 사이가 무척 나빴다. 목소리를 듣고 이야기를 하기엔 너무 부담이 컸다. 그녀는 지금 집에 있을 것이다.
“응, 난데. 지금 뭐해? 나 있지 대학 동기 녀석이 죽어서 장례식엘 좀 가 봐야 돼. 그냥 저녁 늦게나 돌아 올 거야. 그럼 다시 전화할게.”
메시지를 남기고 나자 난 그곳에 가는 걸 그만 둘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기이긴 하지만 나와는 너무 먼 관계처럼 생각되었기 때문이었다. 목안에 가시라도 걸린 듯 불편했다.
그는 이제 지구상에 없다. 어쩌면 아주 오래전에, 나와 그가 더 이상 만나지 않게 되었을 때부터 그는 지구상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지금 막 돌아온 셈이니 마지막으로 그와 술이나 한잔 하자. 앞으로는 그와 술을 마시고 싶어도 마실 수가 없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을 나섰다.
<나와 K의 마지막 술자리>
운이 나빴다. 분명 그렇게 생각했다.
그의 집 앞에는 상가를 알리는 등이 하나 밝혀져 있을 뿐, 날씨가 추워서 인지 마당에는 차일조차 쳐져 있지 않았다. 문은 열려 있었지만 현관까지 아무도 없이 텅비어 있었다. 나는 조금 망설여졌다. 그 때 검은 양복을 입은 중년 사내가 현관을 나오다 나를 발견했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그가 현관문을 열며 들어 오라는 시늉을 해 보였다. 그는 날 보고 언뜻 미소를 머금기 까지 했다. 하는 수 없었다. 나 역시 검은 양복을 입고 있었고, 그런 차림으로 상가집 앞을 서성이는 사람이라면 누가 보아도 조문객임에 틀림이 없었을 것이므로 그대로 돌아 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텅 빈 듯한 느낌이 들었다. 몇 몇 중년의 사내들이 상을 펴 놓고 술 추렴을 하고 있었고, 가까운 친척인 듯 검은 옷을 입은 중년의 남녀가 마루에 아무렇게나 쭈그려 앉아 있었다. 낮은 조도 때문에 나는 잠시 눈을 껌벅이다가 사람들이 인도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나는 거기서 처음 K의 얼굴을 보았다. 영정속에서 K는 무표정한 얼굴로 날 바라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그의 얼굴이 생각나기 시작했다. 살아 움직이는 그의 모습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어느 맑은 봄날, 그와 함께 대학 정문의 긴 진입로를 걸어 가던 것이며, 문과대의 어두운 회랑을 의미없는 이야기를 나누며 걷던 일. 여러 사람들과 함께 이젠 기억도 나지 않는 이야기를 커피를 마셔가며 지껄이던 어느 벤치며. 그 혼자 가방을 맨 채 문과대 뒷문 계단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있던 모습…그는 이제 세상에 없다.
나는 혼자 그의 영정앞에서 절을 하고,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다. 조금 전 현관에서 만났던 중년의 사내가 손짓으로 날 부를 때까지 난 그 냥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다. 나는 사내가 부르는 데로 방을 나왔다. K의 아버지인 듯한 반백의 사나이는 내가 방을 나올 때까지 꺼칠한 얼굴로 아들의 영정을 바라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는 날 자리로 인도했다. 내가 자리에 앉자 그가 옆에서 허리를 굽혀 날 보며 물었다.
“K랑 친군가?”
“대학 동깁니다.”
“그래?”
“저… 제가 결례를 한 건 아닌지…”
영정 앞에서 엉거주춤 서 있었던 것이 마음에 걸렸다.
“됐어. 괜찮아. 그런데 자네는 K랑 학교 다닐 때 친한 사이였나 보지?”
“글쎄요… 그냥…”
나는 말을 얼버무렸다. 사내는 호기심이 많은 사람인 듯 했다. 사내가 내 앞으로 와 앉으며 말했다.
“그럼 자네가 K의 일을 알리기로 한 그 대학친군가?”
“네. K 어머님한테 연락을 받았습니다.”
“친구들한테 연락이 잘 안됐나 보지?”
나는 집안을 둘러 보았다. 젊은 남자라곤 나 하나뿐이었다.
“아무도 안 왔었습니까?”
그가 고개를 깊숙이 가로 저었다.
“K가 학교에서 조용한 편이었나 보지?”
“네… 조금… 근데 회사 사람들이라도 않왔나요?”
“그냥 조화가 하나 왔을 뿐이야. 젊은 사람은 자네가 처음이네.”
그가 우울하게 말했다. 그는 내게 잠시 있어달라고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곤 부엌에서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잠시 후 K의 어머니인 듯 한 여자와 사내가 내 자리로 돌아 왔다. 사내의 손엔 음식과 소주가 들려있었다. 여인이 물었다.
“K 대학친구라고.”
사내는 그의 외삼촌이라고 했다. 그는 이미 얼굴이 벌겆게 달아 있었다. 담배 생각이 간절했다.
“그 녀석 그저 평범한 놈이었는데…어쩌다 그렇게 가 버렸는지…”
K의 어머니는 간곡하게 내게 그의 마지막을 지켜달라고 했다. 그의 서울에서의 마지막 몇 달동안, 그는 아무도 만나지 않았고, 아무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다고 했다. 그런 K가 너무 서글퍼서 이승에서 떠나 보내는 순간만은 꼭 친구가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고, 이젠 너무 지쳐서 꺼억하는 목소리를 낼 뿐인 어머니가 울며 내게 부탁을 했다.
조문객들은 대게 K의 아버지와 친분관계에 있는 사람들인 듯 그와 비슷한 연배가 많았다. 그 나마도 잠시 K의 아버지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술상을 받아 술을 한 잔 하고 곧 자리를 뜨기 일쑤였다. 게다가 대학 동기들은 물론이고, 그와 연관이 있을 듯한 젊은 사람은 한 명도 볼 수가 없었다. 내 또래의 사람은 그의 누나와 매형되는 사람 뿐이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나는 다시 그에 관한 기억이 가물 가물했다.
“그런데, 내성적인 것 같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는데, 이렇게 친구가 없을 줄 누가 알았겠어? 참 기가 막힐 노릇이지.”
K의 삼촌은 계속 혼잣말 처럼 떠들었다.
“싱거운 농담도 할 줄 알고, 싹싹한 면도 없지 않았는데. 이렇게 쓸쓸하게 가다니.”
그는 끊임없이 쓸쓸하게 가는 조카에 대한 연민을 표현했다. 그는 인도에서 비명행사를 했다. 조사기관에 의하면 K는 강도를 맞은 것 같다고 했다. 그가 그의 물건을 갈취 당하는 장면을 여러 사람이 목격했다고 그 조사기관은 전했다.
결과적으로 그는 여러사람 앞에서 강도를 당했다는 것이 된다. 그토록 많은 사람이 목격을 할 만한 강도 짓이란게 도대체 있는 것인가? K가 누구나 탐을 낼만큼 호사스런 물건을 드러내고 다녔단 말인가? 인도란 나라가 저 먼 은하계의 너머의 외계처럼 느껴졌다.
“범인은 잡았습니까?”
그가 고개를 저었다.
“범인은 고사하고, 유품이 될만한 것도 아무것도 못 받았어.”
K의 삼촌은 그 집의 잔뜩 꺼져 내려앉은 분위기를 못 이겨하는 듯, 날 상대로 묻지도 않은 이런저런 말들을 해 주었다. 그것은 도리어 혼자 다짐을 하듯 중얼거리는 것에 가까웠다. 그가 술잔을 비우고 그 잔을 내게 따라 주며 말했다.
“인도에 가서 한달 쯤 되고 나서 그 지경을 당한 모양인데. 생각을 해 봐, 그 강도놈은 초자였을 거야. 한달쯤 베낭여행을 한 여행객이면 행색이 좋진 않았을 텐데. 그런 여행객을 상대로 고른거며, 그런 아이의 얼굴을 그토록 형체도 알 수 없게 짓이겨 놓은 걸 보면… 놈도 엄청 겁에 질려서 그랬던 거겠지.”
그가 피식 웃었다. 중년의 사내들은 장례식에서 무척 태연하다. 그들은 영화에서 보듯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지 않았다. 그저 담담한 보통날의 얼굴을 가지고 웃기도 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사자(死者)를 화제에 불러 올리기도 했다.
나는 그의 장례식에서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있었지만, 그리고 그의 영정을 보고 얼굴을 기억해 내긴 했지만, 그의 이야기에서 그에 대한 질량감은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그건 마치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내가 아버지에게 들을 때처럼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일 뿐, 몇 해전만해도 함께 대학을 다니던 사람의 이야기라고 느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나는 도리어 K의 삼촌에게서 K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현실감각을 잃어갔다. 시간이 엉클어졌고, 내가 있는 장소가 공간에서 표류를 했다. 나는 그렇게 방향감각을 잃고 있는 날 붙잡기라도 하려는 듯이 주머니속의 핸드폰을 부표처럼 붙잡고 있었다.
은아에게서 전화가 올지도 모른다. 지금이 몇시일까. 많이 늦은 시간인 듯 했다. 은아는 늘 이 시간쯤이면 전화를 하곤 했다. 하지만 은아는 전화를 안할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야심이 큰 여자였다. 그녀는 자기 일에 거의 동물적인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 승승장구란 말은 정말 그녀에게 잘 어울리는 말이었다. 그리고 그런만큼 그녀는 내게 승승장구할 것을 요구했다. 표현은 하지 않고 있지만, 그녀는 내게 많이 지쳐있었다. 점점 나는 그녀가 한심한 눈으로 날 지켜 보고 있지는 않은지 의심이 생겼다. 이젠 그녀와 섹스도 할 수 없었다. 어두운 방에서 그녀의 얼굴을 보면 그녀의 안광이 날 죽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니 그 보다는 내가 그녀의 목을 조르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이라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그녀의 안광은 날 경멸하는 눈 빛일테니까.
이렇게 잠이 들면 안되. 나는 내가 깜박깜박 졸고 있다고 느낄 때 마다 그렇게 날 불러 세웠다. K와의 마지막 자린데 그가 오질 않았어. 그를 기억속에서 불러 내올 수가 없었다. K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 나는 그가 알고 있던 사람들을 대표해서 그의 마지막 가는 길에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내게 나타나지 않다니. 이 모든 일이 헛깨비를 데리고 치르는 한바탕 소동 같았다. 가슴이 답답한 소동. 내가 왜 이곳에 이런 모습으로 있는 것일까. 확실히 나는 운이 나빴다. 나는 흩어져 가는 의식속에서 그의 모습을 불러내려 애를 썼다. 그렇게 안간힘을 쓰다가 나는 잠이 들었다.
밤새 열대의 오솔길을 걷는 꿈을 꾸었다. 강에는 흙탕물이 급류를 이루며 흐르고, 그 곁으로 커다란 야자나무들이 나뭇잎 부비는 소리 한점 없이 오솔길과 강 사이로 길게 늘어 서 있었다. 시간이 언제인지, 걷고 있는 게 과연 나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다만 흙탕물이 흐르는 더러운 강물과 정물화인 듯 얼어 붙은, 움직이지 않는 야자나무가 있을 뿐이었다. 기묘한 광경이었다.

이라뇨…
기다려야죠;;
고맙습니다.
일단 부지런히 이것저것 올리려고 하는 중입니다.
그런데, 홈페이지 관리하는데 아직 익숙하지가 않아서 수정하는 것만도 벅차네요.
첫 댓글이시네요.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