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am vengeance.

I am vengeance

나는 시나리오 작가다

나는 그동안 시나리오를 써 왔다. 지금까지 누가 뭐래도 내 직업은 영화인이자 시나리오 작가였다. 하지만 굴욕적인 서류에 도장을 찍어야 했던 어떤 사건을 겪고 나는 갑자기 그 지위를 강제로 빼앗겨버린 기분이다. 이 사건은 도장을 찍기 전부터 거의 반년 넘게 나를 계속 괴롭혀왔다. 영화를 한다는 것이 자격증이 필요한 것도 아니고, 또 어떤 일이 생겼다고 해서 자격을 상실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은 마치 낙인처럼 내게 남았다. 내가 영화를 할 자격이 없는 인간인 것 같은 자격지심이 생겼다. 이 일로부터 시작된 급격한 추락은 아무리 마음을 돌리려 애를 써도 되돌려지지 않았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런 마음도 있었다. “그래, 정작 도장을 찍고 나면 다른 더러운 일들처럼 이 또한 지나가겠지. 그럴 거야.”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도장을 찍고 나자 더 참혹해졌다. 굴욕적인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자 다시는 그곳에 얼씬거리지 않겠다며 고개 숙이고 무릎 꿇은 꼴이 되고 말았다. 나는 개처럼 끌려 나와 영화 판 바깥으로 내팽개쳐졌다. 벌거벗겨진 채 심한 모욕을 당한 뒤 다시는 시나리오를 쓰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앞으로 시나리오를 쓸 수 없다고 생각하자 갑자기 나는 멘붕에 빠졌다. 시나리오는 영화로 만들어지지 않으면 버려지는 글이다. 글로 씌어 있지만 누구나 읽을 수 있는 글도 아니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제 무엇을 할지 고민이 시작됐다. 고민의 시간은 한참이나 계속됐지만 뾰족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고민이 계속 맴돌기만 했다. 이를테면 이렇다. “시나리오를 쓰지 않는다. -> 그렇다면 다른 일을 할 것인가? -> 다른 할 줄 아는 게 없다. -> 하지만 시나리오는 쓰지 않을 거다. -> 그렇다면 완전히 다른 일보다는 그래도 비슷한 일을 하는 게 낫지 않을까? -> 소설, 청소년 소설, 동화 등 다른 장르 글쓰기? -> 수익이 쉽지 않다. -> 유튜브를 하면 어떨까? -> 많은 노력과 지명도를 가지기 위해서는 몇 년이 걸릴 수 있다. -> 하지만 다시 시나리오는 쓰고 싶지 않다. -> 다른 일 할 줄 아는 게 없다….

이런식으로 계속 맴돌았다.

어떤 계기가 생기지 않는 한 완전히 다른 일을 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완전히 다른 돌파구는 떠올려지지 않았다. 이런 상태로 1, 2월이 지나고 이제 3월도 끝나간다. 이제 고민을 접어야 할 시간이다. 아주 아무것도 안 할 수는 없다. 지금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게 중요했다.

고민하는 동안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에 관해 칠판에 써 놓은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1. 숏폼 2. IP 공개 3. 쉬운 이야기 4. Attention 5. 그림 6. 홈페이지 만들기 7. The bureau of loneliness. 8. selling point.

1. 숏폼

대세는 숏폼.

이제 사람들은 점점 긴 이야기를 진지하게 보지 않는다. 캄캄한 장막 안으로 스스로 들어가 두 시간 동안 다른 감각을 모두 닫은 채로 영화를 보는 행위는 이제 한물간 이야기인 것만 같았다. 드라마를 포함해 영화까지 모두 가벼워지고 짧아지는 경향도 생겼다. 그리고 그 끝에는 숏폼이 있었다. 그와 유사한 것을 내가 할 수 있을까 고민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생각에서 조금 벗어나 있다. 어떤 이야기든 그것이 관심을 얻으려면 지속적이고 진정성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문제는 내가 무엇을 생각하냐에 있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어떤 형식 form에 담아야 적당한지 고려하는 건 그 다음이다. 어떤 생각이 담기느냐에 따라 그 이야기가 영화가 되거나 드라마도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시나리오를 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지금도 가끔 그리는 만화에 약간의 기술을 이용해서 동영상으로 만들고 숏폼 형태로 포스팅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것도 지속할 수 있는지, 이것을 해서 뭘 하려는 건지 명확하지 않았다. 무작정 하기 시작한다면, 꽤 손이 많이 가는 이 숏폼은 나를 금방 좌절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2. IP 공개

일종의 대 바겐 세일. 창고 대 방출..

그동안 나는 여러 가지 작품을 써 왔다. 정리가 덜 된 것들까지 포함해서 십수 편이다. 시대가 너무 지나 버려서 지금은 의미를 찾기 힘든 것들이 많고, 또 형식도 트리트먼트, 대본 다양하게 섞여 있는 상태다. 예전 같으면 정리가 덜 된 것들을 사람들 앞에 내놓기 싫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들은 그냥 둔다고 썩지도 거름이 되지도 못할 거다. 그러니 그냥 모두 공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다만 어떻게 공개할지를 고민하고 있다. 조금 손을 봐서 하나씩 공개를 할 것인지, 아니면 그냥 전격적으로 공개해 버릴지…. 이즈음 모든 매체가 IP 확보에 목을 매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허접한 것이라도 그냥 공개한다는 것이 꺼림칙하다. 게다가 아이디어를 뺏긴 게 한두 번이 아닌데 또 그런 일이 생길까 걱정이다. 당해보면 기분이 너무 더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작품을 대중에게 그냥 내보이는 일이 익숙하지 않아 선뜻 내키지 않기는 하다.

3. 쉬운 이야기

잘난 체는 이제 ”멈춰!“

부끄럽지만 그동안은 내가 완성되지 못한 <롤란>이나 <스탠리 큐브릭>인 것처럼 굴었다. 클리셰를 최대한 배제하고 이야기도 조금 다르게 다루려 하고, 인물의 관계도 뻔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래서 내 이야기는 약간의 어려움이 더해지고 그만큼 대중성이 탈락했다. 그동안 유행하는 소설이나 영화들을 보면 늘 이야기가 쉽게 쓰여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했다. 그렇다고 그렇게 쓰는 것을 얕잡아 보고 하는 말은 아니다. 그간 야망이 있었다는 말로 포장하고 싶지만, 결국 나는 <롤란>이나 <큐브릭>이 아니다. 그러니 그저 잘난 체를 했을 뿐이다. 이제는 어려움을 빼고 대중성을 더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대중들이 따라가기 쉬운 이야기, 이해하기 쉬운 주제, 더 흥미로운 구성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4. Attention!

미디어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뺏는 장치.

미디어의 본질은 누군가 자신의 시간을 기꺼이 헌납하고 즐기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미디어 시장은 예전처럼 작고 좁은 시장이 아니다. 종일 보고 있어도 다 보지 못할 만큼 지금은 온갖 볼거리, 읽을 거리들로 넘쳐 나고 있다. OTT도 몇 개나 있고, 각각의 OTT에는 수많은 드라마, 다큐멘터리, 예능이 있다. 여기에 공중파와 케이블 그리고 극장과 갖가지 팝케스트들이 경쟁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강력한 유튜브가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많은 미디어 매체와 콘텐츠들 속에서 내 콘텐츠가 어떻게 선택을 받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Attention이다. 선택되려면 Attention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주목 받는 방법은 무엇일까? 선명한 콘텐츠와 콘텐츠의 항상성이 있어야 한다. 선명한 콘텐츠를 만들고 이를 지속적으로 제공하는 것. 모든 소재를 다룰 수 있지만 나만의 선명성을 가질 것. 만들어진 콘텐츠는 늘 일관성이 있고 지속적인 항상성이 있을 것. 채식주의자 콘텐츠를 하면서 돈가스 먹는 먹방을 올린다면 이는 선명성이 아니라 선정성이 되고 나와 콘텐츠의 일관성이 파괴된다. 콘텐츠와 나, 그리고 항상성은 상호작용한다. 그러므로 주목 받기 위해서는 나, 콘텐츠 그리고 항상성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드시 어텐션이 따라 오게 되는 것일까?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여기에는 운이 필요하다. 반면 운이 있다면 이 모든 게 갖춰져 있지 않아도 Attention을 받을 수 있다. 또 어떤 때에는 모든 게 갖춰졌대도 아무런 Attenton을 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리하여 나중에 결과적으로 전자는 때마침 다 갖춰져 있었다고 평가 할 것이고, 후자는 사실은 아무것도 갖춰지지 않았다고 평가하게 될 것이다. anyway.

5. 그림

약간의 채색을 포함하는 그림.

나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웹툰을 연재할 수 있는 실력은 되지 않지만 4칸 만화나 만평 정도는 간신히 그릴 수 있다. 웹툰은 보고 있으면 좋은데 그리자고 생각하면 엄두가 안 난다. 웹툰 작가들은 정말 한 컷 한 컷을 너무나 정성 들여 그린다. 나는 그렇게 그릴 수 없다. 설사 내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인내심과 열정이 없어서 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대충 그림 같은 건 그릴 수 있으니 Attention 도구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하면서 실력이 쌓이면 또 그만큼 더 주목을 끌 수도 있을 거다. 그러니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다만 적당하게 분수에 맞게 할 생각이다. 처음에는 내가 그림을 그려서 그것으로 동영상을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래서 내가 만든 모든 IP를 만화나 동영상으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림을 직접 그려서 연습 삼아 동영상을 한 번 만들어 보고는 바로 포기했다. 거지 같은 그림체에 형편없는 연출로 1분짜리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면 주 60시간도 모자랄 판이었다. 그래서 일단은 나중으로 미뤄 두기로 했다. 손이 더 빨라지고 그림도 좀 나아지면 그때 다시 시도해야겠다. 물론 어떤 조건이 되어도 계속 그림은 그릴 계획이다. 무엇보다 잘 그리고 싶다.

“내 콘텐츠가 어떻게 선택을 받을 것인가. 그것이 바로 Attention이다.”

6. 홈페이지 만들기

AI 시대에는 유튜브도 블로그도 재래시장이다. 다가올 이커머스 시장에 홈피는 필수.

인공지능의 발전은 더 이상 우리가 검색을 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었다. 지금까지는 동영상을 찾기 위해 유튜브로 찾아가고, 뉴스를 찾기 위해서 네이버를 검색하고, 궁금한 것을 알기 위해 위키트리를 찾아가야 했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냥 AI에게 물으면 된다. (갑자기 AI로 튀니 어색하지만, 앞으로 곧 일어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내 콘텐츠를 모두 모아 둘 홈피를 가져야겠다고 생각했다. 물론 다른 유튜브나 블로그 등등에도 계속 내 콘텐츠를 올릴 것이다. 나라는 브랜드를 만들고 발전해야 한다고 앞서 말했었다. 미래를 생각했을 때 이를 위해서는 홈피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유튜브나 브런치, 블로그, SNS 등에 올라가는 모든 글과 콘텐츠가 홈피에 올리면서 기반 시설로 만들어야 한다. 누군가 찾는 내가 만든 콘텐츠를 AI로 찾는다면 곧바로 홈피로 연결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야 나의 홈페이지에 닿은 사람들이 나의 또 다른 콘텐츠에 다시 시간을 쓰게 될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나의 홈피에서 시간을 보내게 하려 한다면, 언제나 새로운 볼거리 읽을거리가 즐길 거리가 있어야 한다. 1번과 5번이 필요한 이유다.

7. The bureau of loneliness

영국 정부에는 공식적으로 The ministry of loneliness가 있다.

나도 시간이 남을 때는 무작정 유튜브를 뒤적이고 넷플릭스를 뒤적인다. 그리고 페이스북 같은 SNS를 본다. 하지만 내용을 자세히 들여다보지도 않는다. 그저 제목을 훑어보다가 숏츠를 보고 다른 매체로 넘어갈 뿐이다. 케이블을 볼 때 우리는 계속 채널을 돌리고, 넷플릭스를 볼 때 우리는 그저 제목을 훑을 뿐이다. 이게 모두 외로워서 그렇다. 사람은 심심한 것을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이토록 콘텐츠가 풍부해졌는데도 여전히 사람은 외롭다. 나는 홈피를 만들면 대문에 뭐라고 적을까 고민했었다. 두 가지 후보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이 The bureau of loneliness다. 적적함을 달래 주는 역할을 하겠다는 거다. 대문에 적을 나머지 하하나의 후보는 영화판에 대한 저주다. ”영화판이 망해야 할 열 가지 이유“ 따위를 대문에 걸어 놓는 거다.

8. selling point

무엇을 팔 것인가.

어떻게 수익으로 연결할 것인가.

이 부분은 위에서 거론한 1번에서 7번까지가 모두 연관이 되어 있다. 하지만 만약 내가 소설을 쓴다거나 하는 다른 선택을 한다면 다 소용없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