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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로윈의 밤

novel

지난 18년간 이날을 손꼽아 기다렸지만 이건 정말 아니다. 18년인데 18!

”우웨엑-!“

민하는 요란하게 변기에 토했다. 하지만 소리만 요란했을 뿐 거의 나오는 게 없었다. 토할만한 것은 벌써 다 토했다. 민하가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린 게 벌써 네 번째였다. 잠은커녕 토가 나오는 걸 참은 기억만 있다. 너무 어지럽고 피곤했다. 지금 뱃속에 남은 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구역질을 해도 노란 액체만 조금 나왔을 뿐이었다. 나올 게 없는데도 구역질은 계속됐고 욕지기도 계속 치밀었다. 위에 아무것도 없다면 대장에 있는 똥이라도 끌어 올릴 기세였다. 그걸 토하고 속이 편해진다면 기꺼이 그러고 싶었다. 그게 위나 소장, 대장이라도 기꺼이 게워내고 싶었다. 그래서 민하는 더 억지로 요란하게 구역질을 해댔다. 지난밤 술을 마시던 자신이 원망스러웠다. 마루에서 태진이 뭐라고 했지만, 민하는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민하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이것도 아니야.“

호원의 집이 빈다는 소식에 민하와 태진은 학교가 끝나자 곧바로 호원을 끌고 집으로 왔다. 동네 슈퍼에서 술을 살 때 셋은 체육복을 입고 갔다. 아직 미성년자였고 교복을 입고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계산대로 가기 전에 셋은 과자를 잔뜩 샀다. 그리고 계산대에 올릴 때 술병 위로 과자를 잔뜩 쌓았다. 그렇다고 술병이 가려지거나, 과자를 많이 샀다고 봐줄 리도 없는데 셋은 그렇게 했다. 이윽고 술을 계산할 순간이 왔다. 긴장한 민하가 변명하듯 말했다.

”아…. 나 신분증 안 가져왔는데….“

그러자 갑자기 태진이 민하에게 버럭 화를 냈다.

”에이, 신분증을 안 가져오면 어떡해!“

갑자기 태진이 화를 내자 민하는 자신이 뭔가 잘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잘못한 게 없는데도 그랬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술 마시는 계획은 수포가 된다. 그리고 그건 민하 책임이 된다. 민하는 억울했다.

”야. 너 갑자기 왜 그래.“

”그럼 이거 어떡할 건데? 저 술은 어쩌냐고?“

”야, 그게 내 탓이냐? 너는?“

”아 나도 몰라. 맘대로 해!“

태진이 휙- 돌아섰다. 그렇다 도망치려면 지금이었다. 민하도 태진을 쫓아가는 것처럼 돌아섰다. 이제 계산대에는 호원이만 남았다. 호원이가 안절부절못하며 친구들을 불렀다.

”야, 어디가?“

슈퍼 아저씨가 술병을 찍으며 호원에게 물었다.

”아버님이 오늘 집에 계시나 봐?“

”네?“

”아버지가 술 사 오라고 했냐고.“

”네! 네!“

”시험은? 잘 봤냐?“

”네. 머. 그냥 봤어요.“

슈퍼 아저씨는 비닐봉지를 사겠느냐 묻지도 않고 검은 비닐에 술병을 담고 그 위에는 과자봉지를 올려주었다. 집으로 돌아온 셋은 온갖 게임을 하며 술을 마셔댔다. 처음엔 너무 쓰고 맛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술은 점점 술을 불렀다. 또 조금 시간이 지나자 셋은 벌떡 일어나 발을 구르다 소파 위에서 뛰고, 춤을 추다가 마룻바닥을 기었다. 뭘 해도 모두 재밌었고 무슨 얘기를 해도 너무나 생생했다. 잔뜩 고양된 셋은 큰 목소리로 닥치는 데로 떠들어댔다. 민하는 수저를 휘두르며 태진과 호원에게 선언했다.

”야야! 이거다! 이거! 이거야 이거!“

”또 뭔 헛소리야?“

태진이 게슴츠레한 눈으로 되물었다. 민하가 말했다.

”이제껏 살면서 재밌는 게 하나도 없었어! 야! 넌 재밌는 게 있냐?“

”당연하지. 이시카와 미오.“

태진이 말했다.

”손홍민이지!“

호원이도 반박했다. 하지만 민하의 소신은 분명했다. 이거다. 내가 찾던 바로 그거! 신나고, 뭘 봐도 재밌고, 무슨 얘기를 해도 재밌는 이 상태! 바로 이 순간! 그의 인생에서 지금처럼 즐거웠던 적은 결단코 없었다. 조금 전에 본 손홍민의 경기도 이시카와 마오의 동영상도 이것보다 재미있진 않았다. 민하가 소주병을 가리키며 단언했다.

”너 앞으로 내가 완전 사랑한다!“

”이시카와 미오지!“

”아오, 손홍민이지!“

그때 갑자기 현관 벨이 울렸다. 현관 모니터에 아래층 아줌마가 보였다. 깜짝 놀란 호원이 조용히 하라며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현관 벨이 또 울렸고, 조용히 하라고 소리 지르는 호원의 입을 민하가 막았다. 그렇게 셋은 한동안 쥐 죽은 듯 숨을 죽였다. 그 때문인지 아래층 아줌마도 현관 벨 누르기를 망설였다. 그러나 태진이 조그맣게 사람 없어요. 가세요. 라고 하는 바람에 다시 위기가 찾아왔다. 모두 이 상황이 웃겨서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웃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그러자 아이들은 서로의 목을 조르고 팔을 꺾어가며 웃음을 참았다. 위기를 넘기고 조용해진 집. 그 사이 태진은 쓰러진 채 잠이 들었다. 이윽고 아래층 아줌마가 두어 번 현관문을 발로 차더니 마침내 돌아섰다. 민하와 호원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웃었다. 한참을 웃다가 서로 마주 보게 된 두 사람. 갑자기 호원이 민하에게 키스했다. 하지 말라고 지랄했어야 했는데…. 하지만 어째서인지 그때 민하는 호원이 하는 대로 그냥 내버려 뒀다. 그러자 호원은 제법 진지하게 민하의 몸을 더듬었고, 민하는 잠시 뒤 화장실을 가겠다며 일어났다. 민하는 그때 화장실에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뒤에 어떻게 했는지 잘 기억나지 않았다.

”우웩-. 내가 다시 술을 마시나 봐라.“

키스하는 순간을 떠올리자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되돌이켜보니 끔찍했다. 유난히 수염 많던 호원의 인중이 떠오르자 아직도 입 주위가 까끌까끌한 것만 같았다. 민하는 헛구역질이 다시 터졌다. 밖으로 나오니 마루는 지난 밤의 흔적들로 엉망진창이었고 수염 많은 호원은 자기 방 침대에서 잘 자고 있었다.

”저 새끼 다시 보면 내가 개새끼다.“

일단 잠을 좀 더 자야 했다. 어느새 민하가 자던 소파에는 태진이 자고 있었다. 민하는 실랑이하기 귀찮아서 소파 아래 바닥에 누웠다. 하지만 여전히 잠은 오지 않았다. 마치 뇌가 물 위에 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니, 매운탕의 고니 같은 조그만 뇌가 찰박대는 커다란 욕조에 둥둥 떠 있는 느낌이었다. 민하는 어지러운 머리와 뒤틀린 배를 동그랗게 뭉치고 다시 잠을 청했다. 수능이 끝났다. 어차피 학교에 안 가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을 거다.

”아, 몰라. 학교 안 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땐 어찌 된 일인지 민하는 학교를 향해 걷고 있었다. 돌아보니 태진도 나란히 걷고 있었다. 12년 된 버릇은 과연 무서웠다. 민하가 물었다.

”설마 우리 지금 학교 가냐? 왜?“

”몰라. 아- 대가리 아파.“

”머리만 존나 아프고, 나 이제 술 안 마셔.“

”말 시키지 마. 짜증 나.“

둘은 거의 눈을 감은 채 터벅터벅 걸었다. 고개를 떨구고 두 팔도 축 늘어뜨린 채 힘겹게 걷는 태진을 보고 민하가 말했다.

”좀비냐?“

무슨 말인지 몰라 태진이 민하를 돌아봤다. 민하 걷는 모습이 딱 좀비였다.

”응. 너 좀비.“

”새끼야, 너 말이야.“

”아, 말. no. no.“

이내 두 사람은 모두 머리를 떨구며 똑같이 중얼거렸다.

”아으, 골이야.“

민하와 태진은 학교에 와서도 줄기차게 잠을 잤다. 하지만 어떤 선생도 뭐라고 하지 않았다. 민하는 수능만 끝나면, 수능만 끝나면, 이 한마디로 여태 버텨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초등학교 때도 그랬고, 중학교 때도 그랬고, 고등학교 때도 그랬다. 어른들은 수능이 끝난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그때부터 시작이다. 라고 말했지만, 민하는 그때마다 생각했다.

”어쩌라고?“

민하는 수능이 끝나면 모든 게 끝나는 거라고 다짐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만일 이 지겨운 레이스에 끝이 없다면 누가 계속 달리겠나? 그냥 포기하고 말지. 그래서 민하는 수능만 끝나면! 수능만 끝나봐라! 수능이 끝나면! 하고 별러 왔다. 그리고 정말 수능이 끝났다. 민하는 그동안 공부 때문에 미뤄뒀던 걸 다 하겠다고 잔뜩 들떴다. 민하는 바로 수능 다음 날 같은 국어 학원에 다니던 동화와 밤새 PC 방에서 게임을 했다. 그다음 날에는 하굣길에 즉흥적으로 의기투합한 반 아이들과 코인 노래방에 갔다. 학원도 갈 필요가 없었다. 또 어떤 날은 논술학원 친구들과 공원에서 온갖 담배를 피워 보기도 했다. 그리고 어제는 호원이네 집이 빈다는 소리를 듣고 같은 수학학원에 다니는 태진이와 술을 마신 것이었다. 술을 마시면서 이거다 이거다! 호언을 했지만, 그것도 술을 마실 때뿐, 그때 왜 그렇게 좋았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 아니, 어째서 그게 그렇게 재밌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었다. 게다가 깨질 것 같은 두통과 숙취가 지금껏 계속되고 있었다. 비록 마실 때는 좋았어도 후폭풍이 너무 셌다. 결국 이 모든 게 민하가 찾는 그것이 아니었다. 그래도 만약 그중에 제일 괜찮았던 것을 하나 고르라면 침대에 누워 종일 핸드폰을 만지는 걸 꼽을 것이다. 그나마 그게 제일 나았다.

십 수년간 수능만 끝나면! 을 고대했던 민하는 그래서 김이 새고 말았다. 도리어 수능 전에 간혹 친구들과 어울려 놀 때가 더 재밌었던 것 같았다. 고개를 돌려 보니 호원의 자리는 아직도 비어 있었다. 집을 치우고 나온다더니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민하는 호원을 생각하자 다시 입술 주변이 까끌까끌하고 몸서리가 쳐졌다.

”으아하-“

그때였다.

”이 반도 애들이 많이 안 나왔네.“

연재 목소리였다. 민하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어느새 연재가 민하 옆에 서 있었다. 민하는 연재를 보고 지금 꿈을 꾸는가 싶었다. 정말 너무 오랜만이었다. 못 본 지 한 달은 넘은 것 같았다. 학교에서도, 학원에서도 보이지 않던 연재는 수능이 끝나고도 볼 수가 없었다. 진학 문제로 안 나오는 건지, 아니면 아픈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누군가에게 연재가 어디 있냐고 물어볼 용기도 나지 않았다. 너 연재 좋아하냐? 틀림없이 그런 난처한 질문이 날아왔을 게 분명했다. 하지만 민하는 속마음을 감출만큼 뻔뻔하지 못했다. 게다가 연재의 마음도 모르고 그런 소문부터 나는 건 절대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연재는 학교에서는 장난기 가득한 까불까불한 아이였지만 학원만 오면 할머니처럼 변했다. 꼭 돋보기를 쓰고 바늘귀를 꿰듯 진중하고 조용했다. 민하는 그런 연재가 좋았다. 민하가 한 번은 이 문제에 대해 연재에게 물었던 적이 있었다. 그리고 연재는 전혀 뜻밖의 대답을 했다.

”진중하다고? 하기 싫은 데 억지로 해서 그래.“

”뭐?“

”넌 학원 오는 게 재밌어?“

”그럼 학교는 재밌어?“

”학교는 그래도 재밌지. 재밌는 애들이 많잖아. 내가 다니는 학원에는 재밌는 애들이 없어.“

학원은 학생 성적에 따라서 다니는 곳이 달랐다. 두 사람이 다니는 학원에 성적이 좋은 아이들은 많았다. 여기 재밌는 아이가 없다니! 어째서인지 민하는 그게 자신에 대한 도발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민하는 학원에서 연재만 만나면 짓궂은 장난을 쳤다. 괜히 문 뒤에서 놀라게 하고, 빌린 문제집을 돌려주지 않거나, 필기구를 뺏기도 했다. 전혀 재밌지 않은 짓이었지만 민하는 멈출 수가 없었다. 연재는 그때마다 더욱 정색할 뿐 좀처럼 장난을 받아주지 않았다. 그런 연재를 민하는 혼자 미워했다가, 멍청하게 구는 자신을 자책했다가 했다. 이제 그만하자 다짐했다가 또 장난치기를 반복했다.

”너 학교에서는 안 그러잖아? 여기서는 왜 그래?“

언젠가 연재가 지적했을 때는 꼭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민하는 깜짝 놀랐다. 그때 민하는 얼굴이 붉어진다는 게 어떤 말인지 처음 알았다. 왜냐하면 가스 불을 켠 것처럼 광대뼈 밑이 뜨거워졌기 때문이었다. 민하는 다시 보게 된 연재가 반가웠다.

”너 야…. 연재야, 너 진짜 오랜만이다.“

”야 나 학원 관뒀잖아.“

”왜? 시험은 봤냐?“

”글쎄, 넌? 잘 봤어?“

”원장님이 재수하래.“

”그래서 재수할 거야?“

”그래야지. 너 그동안 왜 안 보였어? 어딨었냐?“

”나 찾았냐?“

”좀. 찾았지.“

민하는 연재가 보이지 않는데도 찾을 겨를이 없었다. 시험이 코앞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시험이 끝난 뒤에도 연재를 찾지 않았다. 갑자기 연재를 잊은 것처럼 그랬다. 돌이켜보니 조금 이상하기는 했다. 재밌는 걸 찾느라 정신이 없었던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어쩌면 내일쯤엔 연재를 찾아 나섰을지도 몰랐다. 연재가 민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에는 약간의 원망과 섭섭함이 담겨 있었다. 연재가 다 안다는 듯 입을 비죽거리며 말했다.

”치- 관심도 없었구먼.“

”야, 너 죽었다는 애들도 있었어.“

”그래?“

”그래.“

”그럼, 저기 오늘 학교 안 나온 애들은? 죽은 거야?“

연재가 교실의 빈자리를 가리켰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아이들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그야말로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가 없는 상태였다. 민하가 수긍했다.

”그러게.“

”학교 안 나오고 뭐 하고 있는 걸까?“

”정말 죽은 거 아냐? 하하.“

”너 스티브 잡스 스탠퍼드대학 졸업 연설 기억나? 거기서 잡스가 이런 말을 하잖아. Death is very likely the single best invention of life.“

”그래?“

”궁금하지 않냐. 잡스는 왜 죽음을 삶의 발명품이라고 했을까?“

”정말?“

”응. 넌 별로 궁금하지 않지?“

”아니야, 궁금한데? 왜 발명품이라고 한 거지?“

”아니, 쟤들 말이야. 쟤들 뭐 하는지.“

”아. 그것도 궁금하지.“

”애들 뭐하나 같이 알아볼래?“

연재가 말했다. 민하는 호원이네 집에 갔을 때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때 이후로 친구 집에 가 본 건 처음이었다. 우물쭈물하고 항상 한 발 뒤로 빠져 있고, 눈에 띄지 않게 행동하는데 또 이상하게 눈에 띄는 호원이. 수염탓일까? 그런데 어째서인지 민하가 가 본 호원이네 집은 호원이가 왜 그런 아이가 됐는지 말을 해주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제법 잘 안다고 생각하던 호원이었지만 호원의 집에서 호원이를 보는 건 또 달랐다. 수능이 끝나고 등교하지 않는 정행이 나연이 수영이… 이 아이들의 집은 어떻게 생겼을까? 민하는 그런 생각을 하자 갑자기 긴장되면서 배가 아팠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이 일이 꼭 해야 할 일처럼 민하는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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